top of page

 눅눅한 거리는 아침 해가 녹아 미지근한 안개로 희미하고 불투명했다. 도시는 그를 배척하듯 밀어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묵직한 덩어리는 불청객을 가두고 곧 그의 시야도 지워버렸다. 모든 것이 매그너스를 숨기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이곳에 없는데. 매그너스를 찾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내놓지 않는 도시에 진절머리가 났다.
 습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이 늘어져 이마를 덮었다. 눈 밑은 살짝 꺼지고 입술은 까칠했다.

화살이 박혔던 부위는 깨끗하게 아물어 상흔조차 남지 않았는데 알렉은 여전히 통증에 시달렸다.

알렉은 힘겹게 숨 쉬며 가슴 언저리를 문질렀다.

 곁에 있어줘.

 알렉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매그너스를 찾는 내내 긴장과 스트레스로 굳어진 미간은 주름져 있었다.

곁에 있어달라고 했잖아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발끝을 흐트러뜨렸다. 어지러운 사람처럼 휘청거렸지만 곧 단단히 바로 서 또렷한 눈으로 앞을 주시했다. 알렉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고 날카로웠다. 
 매그너스의 부재를 알아차렸을 때 알렉은 주저하지 않고 뉴욕을 떠났다. 제이스는 차마 그를 붙잡지 못했다.

이자벨과 클레리가 그의 주의를 돌리려 했다. 클레이브는 이미 충분히 그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알렉의 이탈은

결코 그답지 않았다. 모두에게 불리했을 뿐더러 지나치게 이기적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에 놓쳤다. 매그너스는

알렉의 세계에서 너무나 쉽게 사라졌다. 단 사흘도 참기 힘들었던, 매그너스가 없는 아침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매그너스의 흔적은 코덱스에 있는 정보만큼이나 한정적이었다. 매그너스는 그를 추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부터 자유롭게 숨었다. 알렉에게 호의적인, 거의 유일한 월록인 카타리나가 알렉의 연락을 피했으므로 포털을

통해 이동할 수 없었다. 또한 매그너스를 찾는 일은 전적으로 알렉의 개인의 문제였으므로 각 나라의 인스티튜트 지원 역시 받을 수 없었으므로, 알렉은 메모지 한 장을 겨우 채우고 있는 정보만으로 매그너스를 찾아야 했다.
 먼데인들의 방식으로 이동했다. 런던을 시작으로 파리와 코펜하겐을 거쳤다. 뉴욕을 떠나기 전 제이스가 도와

매그너스를 추적했었지만 어디서도 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처럼, 마찬가지였다. 그는 없었다. 어디에도.
 길 잃은 아이처럼 헤매다 다시 돌아온 도시의 안개 속에서, 알렉은 카타리나에게 연락했다.

알렉의 연락을 무시하는 이유가 매그너스 때문이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했다.

알렉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무기력했다.

 
 [카타리나. 부탁해요. 제발.]


 희끄무레한 하늘이 한 뼘쯤 선명해졌을 때, 오래도록 기다리던 메시지가 알렉을 찾았다. 간결하고 분명했다.
 

 [돌아가요. 집으로.]


 알렉의 손이 떨렸다. 알렉은 다시 한 번 카타리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더러 포기하라는 건가요?]


 기대하지 않던 회신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제법 빨랐다. 카타리나는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알렉은 그에게 매달렸다.
 

 [그는 그곳에 있어요, 알렉.]


 [로프트는 비었어요. 적어도 내가 돌아가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거예요.]


 [아뇨, 알렉.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매그너스는 계속 그곳에 있었어요.]


 [카타리나. 그는 마력을 모두 잃었잖아요. 내게서 보이지 않게 숨을 수 없을뿐더러 내가 그를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어요.]


 [내가 있잖아요.]

 내가 도와줬어요.

알렉이 숨을 들이켰다. 바닥을 세게 박차며 뛰었다. 안개가 옅어지고 있었다.
 


 룬의 문양을 타고 번졌던 빛이 사그라지고 로프트의 문이 힘없이 열렸다. 알렉은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카타리나의 연락을 받고 바로 움직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알렉은 매그너스가 사라지고 나서도 얼마간은 로프트에 머물러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했고 지독할 정도로 혼자였다. 
 손가락 두 마디 쯤 벌어진 문틈으로 알렉이 치를 떨던 적막이 쏟아졌다. 이렇다 할 움직임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로프트 전체가 마치 석회화 된 월록의 심장처럼 잠들어 있었다. 매그너스는 마력을 잃었을 뿐이지만, 그가 마음까지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알렉은 커다란 손으로 까칠하고 퍽퍽해진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가 그를 도와줬어요. 
 매그너스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었어요, 알렉. 
 줄곧 함께였다고요.

 두 달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비어있었던 공간이라고 하기에 로프트는 지나치게 말끔했다.

알렉은 여전히 혼자였지만 이전과 달랐다. 달라야 했다. 매그너스는 아득하고 먼 산꼭대기에 있었고,

알렉은 방향을 잃었다.


 “……매그너스.”


빈자리가 그의 부름을 대신 먹어치웠다. 알렉은 벽을 더듬어 매그너스의 선반을 살폈다. 언젠가 그들을 다투게

만들었던 상자에 손끝이 스쳤다. 매그너스가 즐겨 써 곧 잘 비어버리곤 하는 재료의 이름도 훑었다. 현관을 지나며 알렉이 매그너스를 한 번 더 불렀다.


 “매그너스.” 


그는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곧장 침실을 향해 걸었다. 검은색 문은 부드럽게 밀렸다. 알렉은 먼저 그랬던 것처럼 바로 들어가지 않고 짧게 심호흡했다. 흐트러진 곳 없는 풍경이 부자연스러웠다. 알렉은 떠나오기 전의 로프트를 떠올렸다. 그의 기억처럼 흩어지고 무질서했던 것들을. 성급하게 굴지 말자. 알렉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이전과 달라보였다. 한 발자국을 어렵게 떼어 문 안쪽에 들였다. 짙은 녹색의 새틴 포단이 구겨진 곳 없이 정돈되어 있었다. 모퉁이에서 시작 된 자수는 가지를 따라 금색으로 빛나는 나뭇잎이 되었다. 

 네가 생각났어.  
 
 어지럽게 떠다니는 부유물 사이에서 그가 움켜쥔 것은, 

 “여기 있는 거 알아요.”

 영원히 어둠에 휩싸이지 않을 노을처럼 붉은 이불이었다. 매그너스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드물게도 알렉이 좋아했던. 

 어울려요.


 으흠?


 뜨거운 게, 당신하고 닮았어요.


 오호라. 뜨겁단 말이지.


 …?


 알렉산더. 그 뜨겁다는 게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야?


 그거 뭐…. -!! 아뇨. 난 순수한 뜻으로-.


 그래, 그래. 네가 순수한 건 내가 제일 잘 알아.


 매그너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난잡한 월록이잖아?
 
 만개를 끝낸 장미 꽃잎처럼 벌어진 입술에 파묻혔던 키스. 화려하고 집착적이었던 기억을 뿌리치고 떠났던 그 날, 마지막으로 보았다. 로프트 곳곳에 빈틈없이 새겨진 룬 역시 알렉이 떠나던 날 그대로였다. 


 “그 날, 내게 부탁했잖아요. 당신 곁에 있으라고.”


 알렉은 그의 기억과 달라져 있는 침대로 향했다. 옆에 놓인 협탁 위에 작은 유리병 하나가 있었다. 거칠게 갈린 숯과 모래알만한 형형색색의 알갱이들이 담긴 병에서 익숙한 샌달우드 향이 났다. 


 “약속을 지키게 해줘요.”


 유리병을 움켜쥐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언제나 당신 곁에…

심장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알렉은 침대에서 조금 물러나 매그너스가 곧 잘 앉아있던 오렌지 색 카우치를

마주보고 섰다. 
 방향이 맞기를 바랐다. 


 “제발 거기 있어줘.”


 알렉이 손바닥을 활짝 펴 그 위로 병 안의 내용물을 쏟았다. 그리고 긴 팔을 휘저어 그것을 허공에 뿌렸다. 
 까맣고 알록달록한 알갱이들이 뿌려진 궤적 그대로 흩어져 천천히 낙하했다. 하나하나 서로 다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숯 알갱이는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떨어졌다. 점점 작아지다가 바닥에 닿을 때쯤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들은 알렉을 붙들지 못했다.
 알렉은 서로 다른 색깔의 알갱이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러 가지 과일 맛이 나는 사탕같았다. 먼저 떨어진

짙은 붉은색 알갱이들이 보이지 않는 경계에 닿아 멈췄다. 머지않아 작은 폭죽처럼 하나 둘 씩 터지며 비어있던

공간을 뒤덮었다. 알갱이들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순서대로 떨어지고 닿아 터지고 번졌다. 알렉은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그저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이윽고 모든 사탕이 녹아 사라졌을 때, 알렉은 등불이 언제나 자신의 발밑을 밝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찾았다.”

 끈적끈적한 얼룩처럼, 매그너스가 흐느적한 몸을 카우치에 묻고 반들거리는 은회색 가운을 여몄다. 언제나

있게 세워두던 머리카락은 아래로 늘어져 있었고, 짙은 아이라인과 눈두덩을 뒤덮었던 화장은 짧게 깎여있던 수염과 함께 사라져 있었다. 매그너스는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어려 보였다. 그리고 훨씬 더 지쳐보였다. 

말간 얼굴에는 나약함과 자기혐오, 바늘 끝 같은 예민함이 깔려있었다.


 “매그너스.”  


 그는 알렉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발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늘진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알렉은 매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돌덩이처럼 굳어 미동도 없는 연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매그너스. 알렉이 다시 한 번 불렀지만, 창백한 입술은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렇게 내버려두지 않아.”


 알렉이 매그너스의 무릎에 손을 올리고 수척한 뺨을 어루만졌다. 매그너스는 홀로 있었다. 알렉은 매그너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알렉의 눈앞에 있지만, 그의 마음이 여전히 은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렉이 매그너스의 무릎에 이마를 대고 맹세하듯 속삭였다.

 “내가 당신을 찾아올게.”

 매그너스의 시선이 알렉에게 떨어졌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리고 고요해 알렉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매그너스는 눈이 먼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하며 눈을 감았다. 


선명한 횃불이 어둠에 휩싸인 망막 안에서도 환하게 타올랐다. 

FIN. 

IX The Hermit

bottom of page